두기 (공량)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두기(杜夔)는 후한 말, 위나라 초의 음악가로, 뛰어난 음률 지식으로 아악(雅樂) 부흥에 기여했다. 아악랑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임 후 형주로 갔고, 유표, 조조를 섬기며 황실 음악을 편성했다. 종 주조자 채옥과의 갈등, 조비와의 불화로 옥에 갇혀 면직된 후 사망했다. 그의 제자들은 태악승 등의 관직에 올랐으며, 유협은 그를 칭찬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위의 음악가 - 혜강
혜강은 죽림칠현의 한 명이자 위나라 종실의 인척으로 유교적 권위주의와 형식주의를 비판하며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은둔 생활을 즐겼고, 여안을 변호하다가 종회의 모함으로 사마소에 의해 처형당한 인물이다. - 조위의 음악가 - 채염
후한 말 채옹의 딸인 채염(채문희)은 흉노에 납치되었다가 조조에 의해 귀환 후 재혼하였으며, 아버지의 저서 복원과 〈호가십팔박〉, 〈비분시〉 등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업적을 남겨 후대에 영감을 주고 수성과 금성의 크레이터 이름으로도 명명되었다. - 한나라의 음악가 - 사마상여
전한 시대의 문인 사마상여는 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양효왕의 객경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탁문군과의 사랑 이야기와 무제의 총애를 받아 조정에 복귀하여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 한나라의 음악가 - 채옹
채옹은 후한 말 다재다능한 인물로, 희평 석경 제작에 기여하고 동탁에게 중용되었으나 왕윤에게 미움을 받아 옥사했으며, 그의 학문과 예술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유표와 주변 인물 - 유비
유비는 후한 말 평민 출신으로 시작하여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러 세력을 거치며 활동하다 제갈량을 영입하여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으나, 이릉 전투 패배 후 병사하였다. - 유표와 주변 인물 - 관우
관우는 후한 말기 ~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이자 정치인으로,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로서 유비를 보좌하며 뛰어난 무예와 충절로 이름을 알렸으나, 손권의 계략으로 최후를 맞이한 후 동아시아에서 신으로 숭배받고 대중문화에서 영웅적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강직함과 자만심이 정치적 판단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두기 (공량) | |
---|---|
인물 정보 | |
이름 | 두기 |
한자 | 杜夔 |
로마자 표기 | Du Kui |
자 | 공량 |
한자 (자) | 公良 |
로마자 표기 (자) | Gongliang |
생애 | |
출생 | 생년 미상 |
출신지 | 사례하남군하남현 |
활동 시기 | 후한 말 ~ 위나라 |
주요 활동 | 악관, 관리 |
관직 | |
초기 관직 | 태악령 |
최종 관직 | 협률도위 |
섬긴 세력 | |
초기 | 유표 |
이후 | 유종 → 조조 → 조비 |
2. 생애
두기는 음률에 대한 뛰어난 재능으로 아악랑에 임명되었으나, 중평 5년(188년)에 병으로 사임했다. 이후 형주로 가서 유표를 섬겼으며, 조조에게 중용되어 아악 복원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채옥과의 갈등, 조비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1]
두기는 아악 복원에 힘써 많은 악기를 제작하고 음악 이론을 정립했다. 그의 제자들은 태악승과 사율중랑장 등의 관직을 역임하며 음악 발전에 기여했다.[1]
2. 1. 초기 활동과 유표와의 관계
중평 5년(188년), 두기는 음률에 밝아 아악랑(雅樂郞)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임하였다. 주와 군의 관리와 사도가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형주로 갔다.[1]형주목 유표는 두기와 맹요(孟曜)로 하여금 한의 황제를 위한 아악을 편성하도록 하였다. 아악이 편성된 후, 유표는 관소의 정원에서 연주를 듣고자 하였다. 그러자 두기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표는 두기의 말을 받아들여 연주를 취소하였다.[1]
두기는 세상이 혼란하자 형주로 피했는데, 형주 목인 유표는 맹요와 함께 천자를 위해 아악을 합주하도록 명령했다. 준비가 갖춰지자 유표가 뜰에서 연주를 구경하려 하자, "지금 장군(유표)은 천자를 위해 합주한다고 공언해 놓고, 그것을 (자신의) 뜰에서 거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라고 간언했기에, 유표는 자신의 행동을 자제했다.[1]
2. 2. 조조의 신임과 아악 복원
조조가 유종을 항복시키고 형주를 손에 넣은 후, 두기를 군모좨주(軍謨祭酒)로 임명하고 태악(太樂) 업무를 맡기며 아악을 만들도록 지시했다.[1] 두기는 종률(鐘律)을 잘 식별하고 총명함이 남달랐으며, 각종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지만 노래와 춤에는 능숙하지 못했다.당시 산기시랑(散騎侍郞) 등정과 윤제는 아악을 잘 노래했고, 가사(歌師) 윤호는 종묘 제사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무사(舞師) 풍숙과 복양은 옛 무용에 정통했다. 두기는 이들을 총괄하여 옛 문헌과 조정의 의례를 참고하고, 음악 이론을 가르치며 악기를 제작했다. 이처럼 옛 음악을 부흥시킨 것은 두기의 공헌이 컸다.[1]
두기는 후한 때 주종공(鑄鐘工)을 지낸 시옥에게 구리 종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종소리가 음률에 맞지 않아 여러 번 다시 만들게 했다. 시옥은 맑고 탁함에 정해진 표준이 없다고 주장하며 두기와 갈등을 빚었다. 조조는 완성된 종을 가져와 연주하게 하여 두기가 음률에 정통하고 시옥의 주장이 허황됨을 밝혔다. 시옥과 그의 두 아들은 벌을 받아 말을 기르게 되었다.[1]
황초 연간에 두기는 태악령(太樂令)·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되었다.[1]
2. 3. 채옥과의 갈등
채옥은 후한 때 주종공(鑄鐘工)을 지낸 자로, 손재주가 뛰어나 새로운 물건을 많이 만들어 당대의 고귀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두기는 채옥에게 구리로 된 종을 만들게 하였는데, 종소리의 맑고 탁함이 음률에 맞지 않아 여러 차례 부수고 다시 만들게 했다. 이에 채옥은 두기에게 맑고 탁함은 일정한 표준이 없다고 대들었다.[1] 두기와 채옥은 서로 조조에게 아뢰었고, 조조는 완성된 종을 가져오도록 한 후 다른 순서에 따라 연주하게 하였다. 이로써 두기가 음률에 정통하고 채옥의 말이 허황됨을 알게 되었고, 채옥과 그의 두 아들은 벌을 받아 모두 말을 기르게 되었다.조비는 평소 채옥을 총애하였다. 한번은 조비가 두기에게 빈객들 앞에서 생황을 불고 비파를 타도록 명한 적이 있었는데, 두기가 이를 곤란해하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후 조비는 다른 일을 트집 잡아 두기를 옥에 가두었고, 두기는 면직된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1]
2. 4. 조비와의 불화와 죽음
조비는 평소 채옥을 총애하였다. 한번은 조비가 두기에게 빈객들 앞에서 생황을 불고 비파를 타도록 명했으나, 두기는 이를 곤란해했다. 이때부터 조비는 두기에게 불만을 품었고, 다른 일을 트집 잡아 두기를 옥에 가두었다. 결국 두기는 면직된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1]두기의 제자인 하남의 소등(邵登), 장태(張泰), 상복(桑馥) 등은 각기 태악승(太樂丞)에 이르렀고, 하비의 진항(陳頏)은 사율중랑장(司律中郞將)을 지냈다.
3. 제자들과 영향
유협(465–522)은 두기, 부현(217-278), 장화(232–300)를 "조조의 실수를 바로잡았다"고 칭찬했다.[1] 송나라 주장문의 논문에는 두기에게 두맹(杜孟중국어)이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두기의 제자 진기(陳頎, 또는 진항 陳頏)는 진 무제 시대의 궁정 음악가였던 순욱(289년 사망)의 스승이었다.
4. 평가
유협(465–522)은 두기, 부현(217-278), 장화(232–300)가 조조의 실수를 바로잡았다고 칭찬했다. (《문심조룡》)[1] 송나라 주장문의 논문에는 두기에게 두맹(杜孟|두맹중국어)이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두기의 제자 진기(陳頎, 진항 陳頏)는 진 무제 시대의 궁정 음악가 순욱(289년 사망)의 스승이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